픽스킬에서 살아보고 싶다


픽스킬(Peekskill)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어디 사세요? 

픽스킬이요.

픽스킬이요? 

뉴욕 인근에 사는 한국 사람 중에 픽스킬이라는 장소를 아는 한국사람이 몇이나 될까? 

퀸즈, 플러싱, 베이사이드, 롱 아일랜드, 뉴저지, 포트리, 테너 플라이, 알파인, 스테이튼 아일랜드, 아스토리아,  스카스데일, 커네티컷….  언제나 항상 흔히 듣는 한국사람들이 사는 지명들이다.

허드슨 강을 따라 볼거리 많고 먹을 거리 많아서, 일부러들 찾아가는  강변 도시들을 꼽을 때에도, 픽스킬이라는 이름은 들어있지 않다. 아니, 들어있지 않았었다. 

그러나 조금 관심을 갖고 보니까 ‘픽스킬’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 꾀 많다. 그 모든 이야기는 이곳이 아티스트에게 천국이라는 거다. 

아 그래?

어쩐지.

처음 픽스킬을 가본 이유는 우리 가게에서 가까운 곳에 좀 싼 집에 살면 안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생업현장에 1년 365일 눈이오나 비가 오나 아침저녁을 한 40분은 드라이브를 하며 한 10년이 지나갔다. 물론, 1년 365일은 과장이지만, 종업원에게 맞겨둔 가게에 신경을 끄고 살수는 없었던 세월들이다.

오른 팔 같았던 종업원이 갑자기 그야말로 갑자기 일을 못하게 되니, 다른 사람을 구하는 과정이 완전 아수라장처럼 느껴진 건 그 만큼 MOM and POP 가게를 해온 우리 두 사람이 늙은 탓이다.

'우리가 세금비싼 스카스데일에 살 이유가 뭐야?' 두 아이도 가정을 꾸미고 잘들 사는데.

가게 종업원 대부분이 어디 사냐고 하면 픽스킬이라고 해서, 가게에서 한 10분 거리인 픽스킬은 막노동하는 가난한 남미인들이 사는 곳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집 값이 무척 쌀거야.

가게에서 곧장 가서 먹고 자고 하는데에는 방 두개짜리 아파트면 되지 않을까?

남편과 지나가는 말처럼 하다가 어느날 인터넷에서 픽스킬 집을 찾아보았다.

허드슨 강이 보이는 방 둘짜리 콘도. 강은 안 보이지만 아주 쌈직한 아파트.

몇 집 주소를 들고 재미삼아 픽스킬엘 갔었다.



픽스킬 기차역 앞에는 허드슨 강이 발 앞에서 출렁인다.

강 건너엔 산등성이가 느슨히 겹쳐있는 픽스킬은 더 없이 평화롭다.

하지만 예쁜 공원과 낭만적인 술집이 있는 역전을 떠나면, 이 작은 도시는 서민의 찌들은 모습을 보여준다. 거리거리마다 낡고 허술한 집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허드슨 강가의 크고 작은 도시들은 거의가 볼거리 많은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왠 일인지 픽스킬만은 오랫동안 가난한 강마을로 내버려져왔었다. 유럽서 온 부자가 이곳에 터를 잡았으면 오래전 영광의 잔재라도 있겠으나. 여기는 별 볼 거리가 없다.

그도 그럴것이 일찌감치 공장들이 들어선 때문이다. 당연히 공장 노동자들이 살았고, 그러다보니 싼 곳을 찾아오는  남미의 이민자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그들의 가족과 친지가 계속 몰려 들었으니 언제부터인가 싼 노동인금으로 살아가는 남미인들의 삶터가 되었던 탓이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우리부부의 생업인 주유소가 있다. 

거의 15년 전부터 집에서부터 40분 거리를 매일 다니고 있었지만, 우리 종업원 대부분이 픽스킬에 살고 있다는 걸 안건 한참 후였다. 종업원 때문에 여기에 올일도 있었고, 교통국에도 왔었고, 어떨 땐 은행에 올 일이 있어서 가끔 이곳에 들리기는 했어도, 나와는 거리가 먼 곳으로 여겼다. 

그러다가 문득 아침 저녁으로 40분씩 운전한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다. 일터에서 가까운 곳에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고 있는 집을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아서, 학군 좋고 세금 비싼 동네에 30년 넘게 주저 앉아 있는 건 오로지 게으름의 소치 아닌가.


어디 한번 보자며 픽스킬의 집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집값이 싸질 않았다. 강이 내려다 보이는 콘도는 꽤 비싸다. 아니, 온통 스패니쉬들이 사는 동네가 왜 이리 비싼지, 이런 동네라면 싼 맛에 오는 거 아닌가 했다.  에이 관두자. 커피나 한잔하고 집에 가자. 하면서 ‘픽스킬 커피 하우스’란 간판을 보고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짙은 커피 향 속에서 얼핏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가 멋쟁이 차림을 한 젊은이들이었다. 칠판에 빼곡히 적힌 고메이(gourmet)메뉴와 배우 지망생 같은 일하는 여자의 태도까지. 마치 맨해튼의 어느 카페에 들어선듯 했다. 벽에 걸려있는 프레임이 없는 유화들은 분명 이 동네 아티스트의 작품이리라.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시상도 떠오른다.

구석 자리에 랩탑을 놓고 앉아있는 나이든 사람들도 남다르게 보였다.


카페를 나와 헌책만 파는 책방에 들어가 봤다. 싸아~하니 오랫동안 잊고 지낸, 내 젊은 날의 향기가 코에 닿았다. 낡은 미술 잡지 하나를 샀다. 유심히 보니까 근처에 갤러리 간판도 눈에 들어온다. 가난한 서민의 동네만이 아니었다. 맨하튼과 가까운 곳이라 예술가들이 찾아오는 곳인가 보다 했다. 

그 때는 거기까지다. 


팬데믹이 덥치고 모든 의욕과 꿈도 덥쳐져 버리고, 우리는 매일 아침 저녁 40분씩을 오가며 열심히 돈벌이를 하고 있는데, 얼마전 미 대륙 끝에 살던 동생네가 더 늙기 전에 뉴욕에서 새 인생을 시작해보고 싶다고 하자, 당장 떠오르는 곳이 픽스킬이었다. 그 때부터 온갖 정보를 찾아보았다. 최근들어 부르클린과 퀸즈 같은 비싼 뉴욕시내에서부터 아티스트들이 찾아오고 있는 곳이라고 했다. 픽스킬 중심가에는 다양한 식당들이 있고,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바가 있으며, 매년 아트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했다. 큰 길가에 커다란 창고 같은 건물은 픽스킬 현대미술관(MOCA , Museum of Contemporary Art)이었다. 또한 허드슨 밸리 다른 도시와 달리 도자기를 하고 있는 동생에게 안성맞춤인, 퍼블릭 도자기 공방도 있었다. 과연! 미래가 있는 동네이네. “얘, 니네 오면 픽스킬에 살면 좋겠다” 


동생네가 뉴욕 답사를 왔다.

‘어디 한번 보자’가 아니라 인생의 전환점을 찾으려는 동생네의 간절함에 맞추어 집을 찾아나섰다. 


부동산 리스트에서 집 크기에 비해서 가격이 그럴듯 한 리버 뷰(River View)라는 이름의 거리에 있는 집을 하나 찾았다. GPS를 따라 집 앞에 이르자 우선 집 모양부터 마음에 들었다. 두개의 높다란 기둥이 선 현관은 그 여느 집과 다르게 품위가 있다. 설명서에는 1920년대에 집을 지은 건축가의 이름까지 적혀 있다. 

‘강이 보인다’는 이름 답게 집 앞에서 강이 보이고, 산도 보인다. 벽돌로 된 계단을 올라가면 현관 앞에 작은 분수대 처럼 생긴 해시계가 서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눈 앞에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의 정교하한 나무 난간이 눈에 들어온다. 드넓은 마스터 베드 룸 창으로도 강이 보이고 나머지 4개의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고 20명은 너끈히 앉아서 먹을 수 있는 다이닝  룸. 분명 그 옛날 어느 부자가 살던 집이다.


이 집에서 동생네랑 같이 살아도 좋겠다. 내 아이들도 주말에 와서 바비큐도 할 수 있고. 강 건너 베어 마운틴에 하이킹도 가고. 아니 이것저것 다 말고 그냥 내 방하나 따로 만들어만 놔도… 가슴이 뛴다.


복덕방 아줌마 말로, 6명의 자녀가 이 집을 물려 받았다고 한다. 골치가 아프단다. 첫눈에는 안 보이던 디테일이 보인다. 집 안 전체가 낡아 있다. 창문 틀도 헐어 있고, 부엌은 80년대 식이다. 

엄청난 돈을 들여야 살만한 집이 될 형편이다. 이 나이에 새로 시작하는 삶이라면  모든 것이 깨끗하게 갖추어진 집에 살아야지. 아아… 골치 아프다.

일단 포기를 했다. 동생 네가 정말로 짐을 싸 들고 뉴욕에 올때까지도 그 집이 안 팔리고 있으면 다시 그 집을 가보자고 했다. 


맨해튼과 기차로 한시간 거리인 이 곳을 뉴요커 아티스트들이 오래 방치해 둘리가 없다. 

며칠 전에도 픽스킬에 들러 일본식 라면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내 속에 갇혀 못 피워낸 꿈을 피워보자는 것이 또 하나의 피울 수 없는 꿈일 뿐일까?

아니, 생각을 깊게 할 필요가 없다. 지금은 동생이랑 도자기 굽고 니캉내캉 커피 마시며 데굴데굴 살아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픽스킬, 강이 내려다 보이는 그 큰 집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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