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스탁 Woodstock

 우드스탁



우드스탁 Woodstock에 가보련다.

그냥 우드스탁이 아니라 1969년 히피들의 뮤직 페스티벌이 벌어졌던 우드스탁, 꼭 50년 전 뜨거운 여름날 들판에서 젊음을 불태웠던 노인들이 골든 에니버서리 Golden Anniversary를 하러 다시 모여 든다는 그 우드스탁이다. 집에서 두 시간만 운전하면 갈 수 있다. 수십만명의 히피들이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며 노래부르고 껴 앉고 키스하고 바닥에서 뒹굴며 자고 깨고 먹고 사랑을 했던 산 마을. 

내가 너무나, 정말 너무나도 좋아했던 미국 팝송 가수들이 발자취를 남긴 그 땅을 밟으며, 나도 내 젊음을 기념해 보련다.


홍익대학교를 다닐 때, 청바지는 남녀 공용의 교복이었고 히피 흉내는 필수과목이었다.

학교 앞 ‘카타리나’ 다방에 앉아 커피 한잔으로 수업을 대신하고, 통기타를 들고 등교한 친구랑  학교 뒷 산에서 대마초를 피운날, 교정 언덕길을 구름을 밟듯 걸어 내려와 7번  버스를 타고 이대 앞 ‘아메리카’ 다방으로 간다. 컴컴한 실내 한 구석에 앉아 한음 한음 쾅쾅 온몸을 울리는 음악 속에 담겨있다가 또 버스를 타고 명동에 가서 칼국수를 먹고, 박정자 추송웅을 보러  ‘카페 떼아트르’로 향한다.

한 밤중이 되어야 집에 들어가면, ‘ 전화 한통하는데 몇 분 걸리나.' 아버지가 하시던 말이다.


미국 디자인, 미국 노래, 미국 잡지. 미국 영화. 나는 미국 식으로 살고 싶었다.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샌 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그 곳에 가면 사람들이 머리에 꽃을 꽂고 자유롭게 평화스럽게 산다고 했다. 


자유라니. 경찰이 학교앞 다방으로 쳐 들어와 장발 남자애들을 잡아 가고 길에서 초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자애도 잡아갔다. 데모로 학교 문은 닫치고 방위대 군인아저씨들이 거리를 메우던 그 때. 우리에게 평화는 없었다. 동그라미 속에 새의 발가락 처럼 그려진, 피터 막스Peter Max의 히피마크로 밖에는 평화를 알지 못했다.  더구나 사랑? 노오. 나는 연애한번 못해봤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에서는 이름 모를 꽃이 만발하고 있었다.


CD도 비디오도 동영상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 가수 죠니 미첼 Joni Mitchell의 노래  ‘우드스탁’의 가사로 자유와 평화의 사랑의 장면을 내 마음대로 그려보곤 했다.  

‘나는 야스거 농장으로 가련다. 

록앤롤 밴드와 같이 노래하고, 

땅바닥에서 캠프를 해야지, 

그 곳에다 내 영혼을 자유로이 풀어 놓을거야…’.

I'm going on down to Yasgur's farm

I'm going to join in a rock 'n' roll band

I'm going to camp out on the land

Got to get back to the land and set my soul free …...


그리고 그녀는 나즈막히 읊어댄다. 우리는 별똥별이고 우리는 황금빛이라고.  

We are stardust, We are golden. 

그것이 나였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반세기, 뉴욕 살이 40년.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곳, 남의 눈치 안보고 산다는 뉴욕인데도 나에게는 단 한순간도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밤에도  대낮 같은 맨해튼에 별똥별은 없고, 미국 말을 하며 사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른 판에, 아니, 무슨 머리에 꽃을? 히피스타일은 역시 흉내였을 뿐.


뉴욕 근교의 평범한 작은 타운인 우드스탁에 가 본적이 있다.  그리니치 빌리지에 방 하나짜리 아파트에 살던  영문학자 최월희씨가 그 곳에 넓직한 주말 하우스를 두었다기에 취재하러 간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우드스탁’이라는 단어에 죠니 미첼 노래를 불러주던 친구가 떠오르고 황금 빛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줄 알았던 그때로 마음이 치닫는다. 하지만 2시간 고속도로를 왕복하고 원고 마감시간 맞추느라, 그나마 일말의 낭만도 끼어들지를 못했다.


우드스탁엘 가 봐야할까? 

요양원에 들어가신 친정어머니를 보러 한국에 갔다가, 남는 시간에 홍익대학교에 갔었다. 졸업 후 처음이다. 미국인에게도 유명해진 ‘홍대앞’이 아닌 홍대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교문서부터 홍대는 더 이상, 나의 학교가 아니었다. 캠퍼스에는 관광객인듯 중국 여자애들이 눈에 띈다. 도쿄의 한 골목을 카피해다 놓은 듯한 홍대앞 골목이야말로 실망 뿐이다. ‘카타리나’ 다방은 물론 사과를 깨물어 먹으며 걷던 골목길도 다 없어졌다. 완전히 변해버린 고향을 찾은 맛이 이건가. 나의 홍대시절은 그대로 놔두었어야 했다. 


과연 우두스탁엘 가볼 필요가 있을까? 

By the time we got to Woodstock

We were half a million strong

노래는 ‘우드스탁에 모이면 우리는 강해진다’고 했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다. 

가슴 한 가운데를 가로지른 황금색 별똥 별, 우스드탁이란 곳은 새파랬던 나의 젊음 그대로 간직하는게 옳다. ‘우드스탁 골든 애니버서리’는 관두자. 


떨어진 낙엽을 줏어 머리에 꽂고 슬슬 걸어다닐 수 있는 곳, 아티스트들이 만든 공예품을 파는 예쁜 상점들과 작은 갤러리가 있는 그냥 캐츠킬 산 속의  우드스탁 작은 마을에 언젠가 한번 쯤은 슬슬 드라이브해서 가보련다.


201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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